격화되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놓고 산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를 중심으로 하는 첨단산업 생태계가 흔들리고, 자칫 이와 비슷한 경영권 분쟁에 한국의 핵심 산업들이 발목을 잡힐 수 있어서다.
글로벌 1위 비철금속 기업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여러 소재는 전자부터 반도체, 자동차, 철강, 화학까지 여러 산업의 기초 소재로 사용된다. 국내 총생산(GDP)의 약 6%를 차지하는 국내 반도체 산업 제조 공정의 필수 소재로 사용될 뿐만 아이라,
전기차 배터리, 그린 수소와 같은 국내 주요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기간산업이라는 점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
7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반도체 황산의 95.9%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사용한다.
생산량의 2%는 중국으로 수출하는데, 이역시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의 수요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생산량 대부분이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쓰이는 셈이다.
한국에서 고순도 황산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 역시 고려아연의 울산 온산제련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데, 향후 황산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MBK파트너스·영풍 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면서 온산제련소를 중심으로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영권이 바뀔 경우 온산제련소의 핵심 기술인력들이 이탈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지난달 고려아연 최고기술 책임자인 이제중 부회장과 핵심 기술인력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MBK파트너스가 경영권을 가져가면 전원 퇴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고려아연의 제련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려아연은 아연·연·은·인듐을 비롯한 비철금속을 고순로 추출하는 기술 부분에세 세계 1위다.
고급 기술인력이 회사를 이탈할 경우 핵심 기술이 해외에 유출될 수 있어 업계뿐 아니라 정부까지 민감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생산 계획이 흔들릴 경우 국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해외에서 반도체 황산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배터리 산업은 소재 밸류 체인이 약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배터리의 원소재인 니켈, 리튬 같은 원료 광물을 확보하지 못했고, 이를 제련해 금속을 추출하는 산업이 빈약하다.
이때문에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소재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고려아연은 2022년 계열사 켐코를 통해 LG화학과 배터리 양극제 핵심 소재인 전구체 합작법인 '한국전구체주식회사(이하 KPC)'를 설립했다.
경영권 변동 가능성이 생기자 고려아연은 최근 이런 전구체 제조 기술을 산업부에 국가핵심기술로 판정해 달라고 신청하기도 했다. 핵심 기술력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 유출될 경우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장욱 서울대 교수는 "배터리 산업에서 중요한 전구체 등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추세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전구체를 만들려면 제련 산업이 중요하고, 고려아연에 문제가 생기면 배터리 생태계에서 마지막 '게이트 키퍼'역할이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용 핵심 소재인 니켈의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고려아연과 현대차그룸의 동행은 기로에 섰다. 고려아연은 내년 5월까지 총 5063억원을 '올인원 니켈 제력소'에 투자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니켈 연4만2600t 생산 계획을 세웠는데 현대자동차가 주요 공급처 중 하나다.
이를 두고 영풍이 HMG글로벌에 대한 신주 발행 무효 소송을 걸어 또 다른 법정 다툼을 진행 중이다.
법원에서 영풍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해당 투자는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최회장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인 제리코파트너스는 이날 이사회를 개최해 영풍정밀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3만원에서 상향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고 관련 안건 다수를 통과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내용은 적절한 시점에 이사회 결의 사항으로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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